•  Chapter 3. 💬 [고민 상담소] 

                          - (1) 사람들의 말에 쉽게 상처 받아요.

진지한 대화, 님은 누군가와 진지하게 대화하는 시간을 일주일에 몇 회, 몇 시간 정도 가지시나요? 저는 유독 약속이 많아지는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외려 이러한 진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 지인들과 가볍게 얼굴 한 번 보자며 만나도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1년의 끝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모든 이야기가 결국 진지한 이야기들로 파고들게 되더라고요. 술의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술잔이 기울여지는 분위기와 알코올의 알딸딸함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제 자신에게 솔직해지더라고요. 평소에는 차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술술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연말은 유독 즐기지 않던 술의 힘을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렇게 각자의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 나의 특정 성격이나 습관, 강박과 기질 같은 것들이 어찌 보면 어느 시점과 시절, 사건이나 사소한 계기들로부터 시작된 회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라우마적인 사건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PTSD'의 대표적인 원인과 증상이 '회피'이기도 하니 말이죠. 우리 모두 각자만의 크고 작은 트라우마 속에서 때론 아파하고 피하고 깨어나오며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확연한 상처, 혹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굳어진 상처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정도와 깊이가 움푹하거나 유독 예민하던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더욱이 그러하고요. 트라우마로 인한 정서적 불안의 극복은 감정적인 지지와 표현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 주며 굳건히 곁에 존재해 주는 것,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주고 홀로 고군분투하는 지독한 외로움의 시간 속 한 줄기의 따스한 손길을 다시금 내밀어 주는 것. 어쩌면 자신도 모르는 상처를 외면하며 생채기를 내고 있을 나와 상대를 위해 사뭇 진지한 대화를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저 들어주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큰 힘과 지지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몰랐던 자신과 마주하게 될 수도 있고요. 심리학계에서는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탐구하면서 인생의 다양한 측면을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까운 이와의 대화가 문제의 본질을 명확히 해주기도 한다 말하고요. 우울증의 대처법 중 하나도 '대화'입니다.

핑계대기 좋은 연말입니다. 한 해의 끝을 핑계 삼아 반갑고 익숙한 얼굴들, 혹은 새롭고 다양한 이들과 '대화'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요즘은 자신에 대한 나름대로의 성찰을 하고 있어요. 사실 자책과 더 가까울 것 같아요. "왜 나는 항상 사람을 만나는 게 에너지를 쏟는 일이 되는 것일까", "왜 혼자 해결하는 게 편할까", "왜 귀찮을까", "왜 얕고 넓은 울타리를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왜 내가 하는 일에 확신을 가지지 못할까", "이게 잘 하고 있는 일일까" 등등 좋게 포장하면 성찰, 직관하면 자책인 생각들이 오갔던 것 같아요.

그 산란한 생각들의 중추는 '세상에 사랑하는 것들이 많으면 한때 사랑했던 것들을 잃어도 다시 빈자리를 메울 수 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상실을 뛰어넘는 발견이 이루어진다.'라는 글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우연히 보게 된 글인데 꽤나 묵직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읽자마자 '나는 세상에 사랑하는 것들이 많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빈자리를 메우고 상실을 채우며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진다 말하는 글을 읽으며 무언가 스스로 텅 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여기서의 '사랑하는 것들'은 사람 간의, 혹은 동물, 사물, 세상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보다는 '의지(依支)'의 개념으로 와닿아 더욱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매 순간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얕은 강박이 있었어요. 심각한 늦둥이에 외동딸인지라 어렸을 때부터 제가 가족의 사랑이자, 힘이자, 희망이자, 꿈이라는 소리를 들어왔거든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지만 점점 초점이 '사랑'보다는 '힘'과 '희망', '꿈'으로 옮겨가더라고요. 부모님께서 늘 '우린 나이가 많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스스로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그래서 '스스로'와 '혼자'가 당연한 것이 되었고 가족의 힘과 희망, 꿈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어요. 부모님의 그 말씀이 제겐 일종의 '트라우마'였던 것이죠. 어쩌면 일찍 결혼해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다는 바람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누군가에게 의지를 잘 못해요. 믿고 따르는 것과 의지는 다른 이야기인데 제게 의지는 '누군가에게 기댐'보다는 '나의 온전하고 솔직한 모습을 편하게 내비칠 수 있는 것'과 가까워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남들에게도 그들 각자가 제게 갖고 있을 이미지나 프레임, 기대 등에 맞춰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정작 그들은 제게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데도 말이죠. 솔직해지자 다짐하고 모든 이에게 온전히 솔직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모습들에 가두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이 알게 모르게 에너지를 갉아먹고 있지 않았나, 그래서 혼자가 편했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그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제겐 '의지'할 만한 곳이 없더라고요. 변하지 않는 '영원'쯤은 되어야 의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듯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늘 혼자만의 동굴로 들어갔던 것 같아요. 어차피 날 잘 알아야 하는 것도, 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전부 나 자신이니까요.

그런데 지난 월요일 앞서 '트라우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지인과 후련히 대화를 나누고 나니 너무 개운한 거 아니겠어요? '얘기한다고 달라지겠어?' 싶었는데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고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후련했어요.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닌데 이렇게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걸 보니 인연의 모든 선이 실선의 직선일 필요도 없겠다 싶더라고요. 뜨문뜨문 계속해서 이어지는 점선일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술의 힘을 조금 빌리긴 했지만..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는 저는 이렇게 또 적당한 취기가 진솔한 대화에 도움이 되는구나도 느꼈답니다^^ 취중진담을 무작정 안 좋게만 볼 것도 아니더라고요😊

아무튼 오랜만에 '대화'를 하고 꽤나 가벼워졌다는 이야기예요. 그래서 이번 연말에는 혼자 꽁꽁 고심하지 않고 '대화'하려고 해요. 뉴스레터 맨 아래에 최근에 정리해 블로그에 썼었던 여러 생각들도 남겨놓을게요. 같이 시간과 머리를 맞대 대화해 보아요 우리!

주로 어떤 호칭으로 누군가를 부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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