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과 영화, 이번 이야기는 바로 <헤어질 결심>입니다. 헤어질 결심은 한 산악인의 죽음을 계기로 마주하게 된 사망한 산악인의 아내 ‘서래’와 사건 담당 형사 ‘해준’이 서로에게 점점 빠져들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입니다. 멜로/로맨스 장르의 영화이지만 ‘사랑’을 다룬 다른 영화들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서래와 해준, 그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사랑한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눈빛과 호흡, 행동과 분위기로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들이 사랑하고 있음을, 서로가 서로를 마음에 품고 있음을 보여줄 뿐입니다. 그런데 과연 그 둘의 감정은 ‘사랑’이 맞았을까요? 관람객이 느낀 그 둘의 감정이 과연 ‘사랑’인 것인가, 이 의문점으로부터 오늘의 심리학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가 알아볼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일찍이 관심을 보였던 심리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변호사이며 작가이기도 한 직 루빈(Zick Rubin)입니다. 그는 이성 간의 사랑에 대해 최초로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있어왔기는 했지만, 심리학적인 현상으로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진 것은 루빈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사랑과 호감을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감정으로 보아 실증조사를 통해 이를 입증하게 되는데요. 그의 사랑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를 통해 사랑을 강렬한 형태의 호감으로 여겼었던 종래의 입장을 반박한 것입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어떤 사람을 매우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을 수 있으며, 이와 반대로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호감은 높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전자는 이해가 쉬우나 후자는 굉장히 역설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데요. 그가 실시했던 설문조사를 보면 어떤 의미인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루빈은 호감에 대한 질문과 사랑에 대한 질문을 나누어 수백 명의 남녀 대학생에게 그들이 친구와 애인에게 각각 다음의 설문에 대해 어떻게 답하지는 지를 조사했습니다.

1. 호감에 대한 질문

- 나는 ~가 대단히 이해심이 깊다고 생각한다.

- 나는 ~의 훌륭한 판단을 매우 신뢰한다.

- 나는 ~과 나는 매우 닮았다고 생각한다.

2. 사랑에 대한 질문

- 나는 ~와 함께 있지 않으면 비참하다.

- 나는 ~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 나는 모든 일을 ~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질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호감에 대한 질문은 상대의 장점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묻는 질문인 반면, 사랑에 대한 질문은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묻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대의 장점이 자신에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지만(호감도는 낮지만),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사랑하는) 경우가 성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호감은 무엇이며, 사랑은 어떤 감정인 것일까요? 우선 호감 ‘좋게 여기는 감정’입니다. 누군가를 말 그대로 좋다고 느끼는 것이죠. 그리고 이 좋다고 느끼는 감정은 대부분 다음 네 가지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게 됩니다. 먼저 ‘근접성’인데요. 사람들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낄 가능성이 큽니다. 자주 만날 수 있고, 그래서 친숙하기 때문에 쉽게 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죠. 영화 속 서래와 해준이 사건 수사를 위해 자주 만났던 것처럼요. 또한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낯선 자극을 반복해서 접하게 되면 호감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단순접촉효과(mere exposure effect)’라고 합니다. 계속해서 접하게 되니 자연스레 스며들게 되는 것이죠. 가까이 있어 쉽게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이나 노력 등 만남에 따르는 부담이 적고 그래서 자주 만나 친해지게 되며 호감이 증가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반대 역시 성립하는데요. 몸이 멀어져서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심리 현상입니다.

두 번째는 ‘외모’인데요. 특히 처음 보는 사람이나 이성 간의 관계에서 외모는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외모로 느끼는 호감은 후광효과로 인해 상대의 성격, 능력 등의 다른 특징에도 긍정적인 지각을 심어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관계가 점점 진전될수록 외모보다는 가치관이나 성격 등의 다른 요인이 더 중요하게 작용됩니다.

‘유사성’ 역시 호감 형성에 중요한 요인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사람들은 자신과 태도나 가치관, 성향이나 취향, 배경 등이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을 좋아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사성이 가져오는 매력은 외모가 가져오는 매력 효과보다 더 강한데요. 이처럼 데이트나 결혼에 있어서 외모보다는 자신과 내면이 잘 맞는, 비슷한 상대를 선택하는 경향을 ‘걸맞추기현상(matching phenomenon)’이라고 합니다. 자신과 비슷해서 더 편하고, 공감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마지막은 ‘상대의 호의’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관심이 없다가도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하면 관심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생기곤 합니다. 굳이 거창한 호감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변화를 알아차리거나 칭찬을 해주는 등 자신에게 관심과 호의를 보이는 상대를 좋아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상대에게 호의를 받은 만큼 자신도 호의로 보답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무의식중에 느끼기 때문이기도 한데 이를 ‘호혜성의 원리(reciprocity principle)'라고 합니다.  

이런 이유들로 좋아하게 되는 감정이 호감이라면 ‘사랑’은 무엇일까요? 사랑도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점에서는 호감과 공통되지만, ‘사랑’에는 단어에서부터 무엇인가 조금 더 깊고 진한 것이 있는 느낌이죠. 그럼 이쯤에서 다시 앞선 의문점으로 돌아와서 과연 영화 속 서래와 해준의 감정은 호감이었을까요, 사랑이었을까요? 해준은 서래가 세상을 떠나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마침내 완전히 붕괴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행동으로 그가 그녀를 사랑했음을 짐작했죠. 서래가 떠난 후 붕괴된 해준의 모습을 보며 그 둘의 사랑이 비로소 확신으로 뚜렷해지게 된 것입니다. 잃고 나서야 뚜렷해지는 사랑, 이러한 원인은 호감과 사랑이 근본적으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정신분석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저서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는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행위(giving)라고 표현합니다. 단순히 관심, 애정뿐만 아니라 ‘나의 일부’를 주는 것, 즉 내가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는 것인가 등이 사랑을 정의하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상대로 인해 받는 고통 역시 호감보다 사랑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 일부를 주었으니, 그만큼 아픈 것이 사랑입니다. 호감에는 없는 헌신이, 나를 내던질 수 있는 마음이 그 둘을 구분 짓는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 역시 사랑의 삼각형을 이론을 통해 헌신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에 따르면 사랑은 초기 사랑의 ‘열정’과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지는 ‘친밀감’, 사랑 유지의 결심 및 관계유지 노력의 ‘헌신’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 세 요소가 정삼각형처럼 균형을 이룰 때 바람직한 사랑의 형태가 된다고 말합니다. 열정은 관계 초기에 급속히 타올랐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는 감정인데 비해 사랑은 안정적이고 점진적인 감정입니다. 따라서 이에 필요한 친밀감과 헌신이 충분한 강도로 발전하려면 사랑이 뿌리내릴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서래와 해준은 사랑이 깊숙이 뿌리내릴 정도의 충분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열정과 친밀감은 있었지만 헌신이 발전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었죠.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서로가 서로에게 안개처럼 스며들어 서래가 안개를 찾아 이평에 가게 만들었고, 해준의 삶을 완전 안전한 원전, 정안(아내)의 곁에서 공허하게 만들었습니다. 석류와 자라로는 그의 공허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오롯이 서래만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뛰게 할 뿐이었습니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서서히 물드는 사람도 있다.” 서래를 잃은 슬픔은 잉크가 퍼지듯 서서히 해준에게 다가갔고, 거센 파도가 서래를 앗아간 후에야 마침내 해준에게도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해준은 서래에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게 스며들었고, 자신의 마음 일부를 내어주었던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녀에게 자신을 주었던 것이죠. 그의 마음엔 헌신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서래를 사랑해 마음의 일부를 주어 붕괴된 해준은 서래를 잃어 도려내진 마음으로 또다시 붕괴되었습니다.

살인 사건에 심장이 뛰고 미제사건을 놓지 못하는 해준을 사랑했던 서래 역시 해준이 찾을 수 없는 곳에서 자기 자신을 살해하며, 그렇게 그에게 미제사건이 되며 마침내 해준의 심장을 가져갔고 자신의 사랑을 확신했습니다. 둘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자리한 사랑으로 무너지고 깨어져 붕괴되었습니다.

“제가 언제 사랑한다고 했죠?”

둘은 울음과 죽음으로, 붕괴와 심장으로 사랑을 말했습니다.

사랑이라는 너무나도 추상적인 감정은 때때로 우리가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게, 상대가 오해하게 만들곤 합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느껴야 하는 우리는 저 사람이 나를 향해 사랑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상대의 말과 행동, 표정과 분위기 등 그 사람이 자아내는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믿어야 하죠. 그래서 더욱 사랑에도 결심과 헌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나를 보여주고, 상대를 알아갈 결심과 관계 유지를 위해 들이는 헌신 말이죠. 그렇게 차곡차곡 모인 신뢰로 상대의 사랑을 굳건히 믿게 될 때, 점점 더 깊이를 더해 가는 사랑의 발전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사랑으로 우리의 사랑이 조금 더 행복한 사랑으로 가득 차길, 서로가 서로로서 사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호감>

 • 호감 발생 요건

     - 근접성 - 단순접촉효과(mere exposure effect)

     - 외모 - 후광효과(halo effect)

     - 유사성 - 걸맞추기현상(matching phenomenon)

     - 상대의 호의 - 호혜성의 원리(reciprocity principle)

<사랑>

• 바람직한 사랑: 사랑의 삼각형 -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

     - 열정

     - 친밀감

     - 헌신

=> 세 요소의 균형

<호감과 사랑>

• 설문조사

   ⇢ 나는 ~가 대단히 이해심이 깊다고 생각한다.

   ⇢ 나는 ~의 훌륭한 판단을 매우 신뢰한다.

   ⇢ 나는 ~과 나는 매우 닮았다고 생각한다.

=> 장점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묻는 질문

  ⇢ 나는 ~와 함께 있지 않으면 비참하다.

  ⇢ 나는 ~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 나는 모든 일을 ~에게 털어놓을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 상태에 대해 묻는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