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요즘 각종 커뮤니티와 SNS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김은숙 작가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특별편입니다. <더 글로리>는 고등학교 시절 끔찍한 학교폭력을 당하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한 여자가 가해자를 상대로 처절한 복수를 시작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오늘은 이 <더 글로리> 속 인물들의 심리를 살펴보며 우리 연진이와 친구들은 왜 그렇게 잔인한 가해자가 되었는지, 그들은 어쩌다 동은이 분노와 악에 성실한 복수를 시작하게 만들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은 그들이 고등학생이었던 시절, 즉 청소년기입니다. 청소년기는 아동기에서 성인기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시기로 이 시기 쳥년은 아동도 아니고 성인도 아닌 어중간한 사이에서, 불안정과 불균형으로 인한 심한 긴장과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흔히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A period of storm and stress)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죠. 이러한 청소년기에 관해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는 청소년기가 시작될 무렵 청년들은 참을성이 없고, 안정감이 없으며, 자제력이 결여된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욕망은 가변적이고 변덕스러워 그것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격렬하지만, 이내 잠잠해진다고 말합니다. 즉 청소년기의 충동은 아주 강렬하지만, 뿌리가 깊지 못하다는 이야기이죠. 하지만 이 시기에 자기결정 능력과 같은 독립심이나 자아정체감, 자아의식 등이 형성되기 때문에 이 강력한 충동을 제어하지 못하고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되면 이후 성인기, 노년기 등과 같은 삶의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인기의 기반인 청소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이후 자신의 삶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죠.

연진이와 친구들은 이 청소년기를 슬기롭게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다른 친구들을 갖은 방법으로 괴롭혔고 음주와 흡연을 일삼았습니다. 끔찍한 학교폭력의 잔인한 가해자였던 그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행 청소년, 그것이 그들을 정의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쩌다 그토록 가혹한 비행을 저지르게 되었던 걸까요?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규명하는 이론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청소년 개인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어 생물학적/심리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생물학적 측면에 따르면 개인의 선천적인 육체•정신적 기능과 환경의 상호작용이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심리학적 측면은 보다 더 정신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비행의 원인이 본질적으로 심리적인 것이라 주장합니다. 특히 학습이론은 청소년의 행동 변화가 기본적으로 강화, 처벌, 모방에 의해 조정된다 말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스키너(Skinner,1953)는 ‘조작적 조건형성’을 통해 비행행동을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청소년의 특정 행동이 긍정적 결과를 낳아 강화가 되면 그 행동이 다시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고, 반대로 그 특정 행동으로 인해 처벌을 받게 되면, 그 행동의 발생 확률이 감소하게 됩니다. 따라서 비행 청소년의 경우, 그들의 부적절한 행동으로 어떠한 보상을 받거나, 또래들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면서 그 행동이 강화되어 결과적으로 비행행동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어디서나 ‘갑’이자 ‘주인공’이어야 하는 연진이는 고등학교 시절 끔찍한 방법으로 윤소희, 문동은을 비롯한 친구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런 폭력을 휘둘러도 연진이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게 해도 연진이는 괜찮았습니다. 청소년기의 또 다른 특징인 상상적 관중(Imaginary audience, 타인은 관객이고 자신을 주인공으로 인식하는 경향)과 개인적 우화(Personal fable, 자신을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로 인식)로부터 시작된 부적절한 행동이 적절하게 처벌받지 못했고, 그렇게 자신의 행동이 괜찮다고 느끼게 되면서 그 행동에 대한 강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월감도 느꼈을 테죠. 그런 잔인한 행동을 해도 자신은 괜찮다는, 너네와 나는 다르다는 인식과 그들에게 인정받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말입니다.

사회학적인 접근으로도 청소년 비행의 원인을 규명하기도 하는데요. 이 이론은 개인의 특성보다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통제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반사회적이며, 따라서 인간이 비행을 행하는 것은 비행행동을 하게 하는 어떤 특정 요인 때문이 아니라 비행을 억제할 수 있는 통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레클리스(Reckless, 1961)의 봉쇄이론(containment theory)에 따르면 비행이 부정적 자아개념의 결과이며 다음 3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1) 내적 방출요인(pushes): 개인으로 하여금 비행이나 죄를 유발하는 개인 각자의 생물학적/심리적 요소 (불만족, 불안감, 개인적 긴장 정도, 두려움, 공격성 등)

2) 외적 유인요인(pulls): 개인으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을 벗어나도록 이끄는 조건들 (친구, 동료, 범죄/비행을 저지르는 하위문화들, 단체, 대중매체 등)

3) 압력요인(pressures) 개인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가 되게 하는 조건 (생활조건, 가족 간 갈등, 낮은 사회적 지위 등)

이 중 내적 방출요인이 비행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어 부정적인 자기관이나 자아를 가질 경우, 외부적 요인에 쉽게 굴복해 비행행동을 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기에는 친구와 동료 등 주변 조건에 영향을 받는 외적요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어울리는 또래집단은 자신의 경험과 행동을 판단하는 데 기준이 되는 준거집단으로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청소년기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민감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즉, 다른 사람의 압력으로 인해 그들의 태도나 행동을 채택하며 동조하는 경향이 있어 또래의 영향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나 어울리는 친구가 중요한 시기에 혜정이는 너무 못된 친구들을 사귀게 된 것 같습니다. 연진이의 무리 중 가장 평범한 혜정이는 충분히 평범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를 잘 못 사귄 나머지 그들을 준거집단 삼아 자신의 행동을 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가해자 무리 사이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게급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며 그들 무리에 속하려 애를 썼죠. 그들 중 가장 평범하기 때문에, 특출나게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지위 높은 부모님을 두지도, 명오처럼 아예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지도 않았던 혜정이는 그렇기 때문에 명오보다는 나아지려, 그렇게 더 위로 올라가려 끊임없이 비교하고 순위를 매기며, 자신을 파멸로 몰아갈 욕망으로 재물과 명예를 탐하면서 아등바등 살아남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혜정이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가해자’라는 무서운 꼬리표를 달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동은이의 자퇴 사유에 자신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혜정이니까요. 그녀의 마음속 아주 아주 깊숙한 곳엔 여린 혜정이가,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는 혜정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또래 집단 못지않게 청소년의 비행행동에는 가족의 영향도 크게 작용합니다. 유아기에서 청소년기,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점차 가족의 영향이 감소되기는 하지만 청소년기는 여전히 부모와 가족의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입니다. 비행 청소년의 가족을 연구한 결과 청소년 비행과 연관이 있는 가족생활에는 네 가지 공통된 측면을 보였다고 합니다. (Snyder & Patterson, 1987)

1. 청소년이 해도 좋은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한 규칙이 없음.
2. 부모의 감독 소홀로 자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이 없음.
3. 자녀훈육에 일관성이 없음, 바람직한 행동을 칭찬하기보다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벌함.
4. 가족문제나 위기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함.

이를 종합해 보면 지나치게 허용적이며 방임하는 부모이거나, 지나치게 엄격하고 권위적인 부모 아래에서 자랄 경우 비행행동을 저질를 확률이 커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 글로리> 속 가해자 무리 부모님들의 행동을 보면 자녀에게 애정을 갖고 온전한 사랑을 쏟아주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연진이는 아버지의 외도로 부모님이 이혼한 이후, 무속인에 의존하는 어머니 아래 칭찬보다는 꾸짖음을, 격려보다는 나무람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자식을 향한 잘못된 사랑으로 연진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러도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죠. 재준 역시 고등학생인 자식을 방치하고 외국으로 골프를 치러 가는 부모님으로 인해 제대로 된 애정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습니다. 연진의 무리 중 가장 주체적인 커리어를 가졌던 사라 또한 목사인 아버지에 따라 상류층의 사교적인 모습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래서 연진이가 자신보다 아래에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을 괴롭히며 우월감을 느끼려 했을 수도, 재준이 부적절한 방식으로 애정을 채우려 했을 수도, 사라가 약물을 통해 환각을 보며 진정한 자신과 마주한다 착각하게 됐을 수도 있습니다. 모든 걸 다 가진 그들에겐 부모의 사랑이 부재했던 것입니다.

“가지를 잘 쳐주고 받침대로 받쳐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버려둔 나무는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주는 말을 잘 듣고 잘못을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라고 공자는 말합니다. 연진의 무리에게는 가지를 쳐주고 나무를 받쳐줄 받침대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가시 돋친 나무가 되어 동은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겼습니다. 결국 그 흉터는 그들의 오래된 소문이 되었고 동은이 분노와 악에 성실한 채 그녀의 10대, 20대, 30대 모두를 바치게 만들었죠.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녀의 증오는 그들의 모든 결핍보다 강했습니다.

불행히도 동은의 세상에서 용서와 평화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았습니다. 힘 있는 자는 더욱 교만해졌고 법은 있는 세상에 벌이라곤 없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동은은 직접 천벌을 내리기로 결심했습니다. 과연 그녀의 복수는 어떤 형태로 그들을 옥죄어 갈까요? 복수가 끝난 후 그녀는 과연 볕드는 양지의 인생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모든 행동에는 마음의 작용이 있고 그 이면에는 갖가지 마음들의 이유가 있습니다. 연진과 그 무리도, 복수를 결심한 동은도 저마다의 마음이 움직인 이유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그 마음과 원인들이, 그 모든 결핍들이 그들의 행동에 대한 면죄부가 되지는 못합니다. 이유와 원인이 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통제할 수 있고, 깨우칠 수 있는 의지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언제나 그렇듯 드라마 속 저들과 우리에겐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 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잘못을 알려주고 깨우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 어떤 순간도 아름답지 않더라도, 백야 같기도 극야 같기도 한 밤 속 폐허가 된 마음일지라도 묵묵한 지지와 사랑으로 보듬어 줄 누군가 말이죠. 그 누군가가 나타나 언젠가 연진과 그 무리들의 모난 마음이 보다 둥글어지기를, 어둑한 마음의 그림자가 걷히고 진정 자신들을 돌아보며 참회할 수 있기를 바라며, 지금 마음속 상처로 아파하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따스함이 깃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