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한 주간 평안히 잘 지내셨나요? 어느덧 4월이 떠나가고 갖가지의 마음으로 맞이한 5월의 첫 주가 반이나 흘러갔습니다. 2023년 새해가 밝아 만나는 사람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하며 신년인사를 나눴던 게 어제 일 같은데 시간이 정말 거짓말같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항상 우리를 속인 적 없이 언제나 정직하게 흘러가는데 왜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면 그간의 짧고 길었던 시간들이 모두 하나같이 거짓말처럼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구독자님과 매거진 블랙아웃이 함께하는 시간 역시 거짓말처럼 빨리 흘러가 독자님의 메일함 한켠에 차곡차곡 쌓여 갔으면 좋겠는 마음에서 오늘 매거진 블랙아웃, <심리학과 영화>는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로 준비했습니다.

님, 님은 혹시 거짓말을 잘 하시는 편이신가요? 저는 거짓말에 능숙한 편은 아닌데요. 나쁜 의도의 거짓말이 아니더라도 사실이 아닌 내용을 말하려고 하면 괜히 어색한 시선처리와 우물쭈물하는 입으로 대부분 들통이 나곤 합니다.

다수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거짓말을 할 땐 불안감으로 인하여 자율신경계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 평소보다 맥박이 빨라지고 침샘이 마르며 얼굴색이 붉어진다고 하는데요. 거짓말을 할 때 분비되는 신경호르몬인 '카테콜아민'으로 인해 콧속의 조직세포가 부어올라 코를 만지기도 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우리의 몸이 반응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렇게 숨기기 어려운 거짓말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짓말을 잘하다 못해 '꾼'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한국은행을 털어 무려 50억의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사기극을 펼칩니다. 완벽한 거짓말 '계획'과 허점 없는 '시놉시스'와 함께 말이죠. 그런데 거짓말 전문가들이 모인 나머지 서로가 속고 속이는 활극이 펼쳐지고 결국 이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서로의 거짓말 속에서 갈피 잡지 못하고 헤매며 희미해진 진실을 향해 걸어 들어가게 됩니다.

영화 말미, 진실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때쯤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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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들었다.

지금 이 사람은 상식보다 탐욕이 크다.

탐욕스러운 사람, 세상을 모르는 사람, 세상을 너무 잘 아는 사람.

모두 다 우릴 만날 수 있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맞습니다. 사기는 심리전입니다. 이들이 하는 거짓말, 즉 사기에는 다양한 심리적 요인이 작용하는데요. 속이는 사람의 심리와 속는 사람의 심리 사이,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서로의 심리가 신경전을 벌이게 됩니다. 속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정말로 진실인 세계를 만들어 그 세계로 상대를 끌어들여야 하는 일이니 어떻게 보면 아주 고도의 심리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사기는 생각보다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에서 출발합니다.

사기는 상대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사기극이 성공에 다다르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자신 스스로 그것이 사실이라 믿도록 설득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모든 걸 빼앗긴 후에도 자신이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죠.

몇몇 연구에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가끔 비합리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는 이유가 '두려움'과 '갈망'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요. 영화 속 주인공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라고 말한 것이 심리적 근거가 있는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거나 결핍 상황에 놓이게 되면 현재 겪고 있는 두려움과 결핍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싶어 하는데 이를 해결하고 싶은 욕망이 지나치게 커지게 되는 것에서 비합리적 사고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최대한 쉽고 빠르게 벗어나길 원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그래서 얼른 이 구렁텅이 같은 현실이 밝고 희망찬 삶으로 변하길 갈구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사기꾼의 사기극에 걸려들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죠.

사람들의 두려움과 결핍을 파고들어야 하는 사기꾼은 어떨까요? 이들은 노골적인 폭력과 협박, 도둑질이나 강요와 같은 수단은 절대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과 결핍이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 줄만한 보다 부드러운 대인 기술을 이용합니다. 사기꾼이 활용하는 심리의 기술은 강압이나 억압이 아닌 신뢰와 공감, 설득과 회유의 방법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강요하지도 않으며 우리 스스로가 알아서 속내를 털어놓고 우리가 원해서 그들을 믿도록 만듭니다. 천천히, 그리고 따스히 정서적 토대를 다져 나가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이들이 이용하는 심리요소에는 대표적으로 '권위'와 '상호성'이 있습니다. 심리학자 밀그램에 따르면 권위를 가진 사람이 반복적으로 지시를 할 때 자신의 신념이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따른다고 하는데요. 사기꾼들은 이를 이용해 유명인 역시 참여했다고 다른 사람의 권위를 이용하거나 위조된 신분증 경력 등을 이용해서 자신을 포장합니다.

또한 이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당신을 특별하게 대한다는 걸 항상 이야기하는데요,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야.", "내가 손해 보면서 해주는 거야.", "우리끼리니까"라고 하며 친절을 베푸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데니스 리건이라는 심리학자의 '상호성의 법칙'에 따르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친절이나 호의를 받으면 그만큼 돌려주고 싶어 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는데 이 때문에 사기꾼들이 베푼 친절에 조금이라도 보답해 주려는 마음으로 조금씩 조금씩 설득 당하며 점점 더 깊이 그 사기극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사기꾼들의 친절한 설득, 따뜻한 분위기 속에 숨겨진 검은 속내를 마침내 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태연하게 거짓말을 해내는 사기꾼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는 <사기술>이라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사기꾼의 특징을 “섬세함, 호기심, 끈기, 정교함, 대담함, 냉정한 무감정, 독창성, 뻔뻔함, 씩 웃는 미소”라고 묘사하는데요. 이 중 ‘냉정한 무감정’은 현대 심리학자들 역시 동의하는 사기꾼의 특징입니다. 

사기꾼 대부분의 특징인 ‘냉정한 무감정’은 일종의 반사회적 행동으로 이들은 타인의 감정에 신경 쓰지 않으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자신으로 인해 타인이 느끼는 고통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이죠.

이러한 행동이 ‘이익’을 가져오는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들과는 반대로 ‘냉정하게 무감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때때로 잘못을 저지르기는 하여도 규칙과 규율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일말의 죄책감을, 미안함을 느끼며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맞추어 진화해 왔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자 에이드리언 레인(Adrian Raine)에 따르면 이 소수의 ‘냉정하게 무감정’한 사람들은 도덕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비도덕적 행동을 함으로써 발생하는 이익으로 인해 점점 비도덕적 행동을 억제하도록 이끄는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부족해지며 지속적으로 비도덕적 행동을 하게 되는, 사기가 소수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는 대안적 진화의 전략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냉정하게 무감정하지 않은 사회에서 '냉정한 무감정'이 그들에게 선택되어 진화하게 된 것이죠.

이러한 ‘냉정한 무감정’이 계획적으로 심지어는 선천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것이 사이코패시(Psychopathy)입니다. 사이코패시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결여된 것으로 냉정한 무감정이 생물학적으로 극단에 이른 형태인데요.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사이코패스(Psychopath)라고 합니다. 사이코패시는 감정을 느끼고 처리하는 능력이 결핍되어 죄책감과 후회, 감정적 갈등 등을 겪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극단적인 냉정한 무감정의 상태를 보이는 사이코패시는 사기꾼에게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행동 특성을 야기하는 생물학적 소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격심리학자 델로이 폴허스와 케빈 윌리엄스는 인간관계를 망가뜨릴 수 있는 인간 성격의 세 가지 성격, 어둠의 3요소(Dark Triad)를 제시하는데요. 사이코패시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두 요소는 나르시시즘과 마키아벨리즘으로 이 역시 사기꾼의 특성과 관련이 있죠.

나르시시즘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을 특별하다 여겨 과도한 자신감과 자부심을 가지며 더 좋은 이미지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결함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나르시시즘과 같은 자기 중심적 성향이 사기극에 동반되죠.

나머지 요소인 마키아벨리즘은 한마디로 정의하면 ‘권모술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상황을 조작하고 타인을 기만하는데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마케팅 교수 리처드 칼훈(Richard Calhoon)은 마키아벨리즘형 인간을 “개인이나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저돌적이고 기만적인 수단을 활용하여 타인을 조종하고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때문에 심리학자 딜로이 폴허스(Delroy Paulhus)는 어둠의 3요소 중 사기꾼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이라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둠의 3요소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고 해서 모두 사기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마케팅직 종사자 1만 명 대상 테스트 결과 10퍼센트 이상이 고도의 마키아벨리즘 성향의 소유자였고 범죄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들도 이 어둠의 3요소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성향에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질적 성향에 불을 지피는 상황과 그로 인해 유발된 동기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기범의 약 3분의 1은 자신의 기질적 성향만으로 사기를 벌이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자신이 속한 환경 내에서 불합리함, 혹은 경쟁적인 상황에 마주하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행동의 필요성이 합리화되는 상황과 기질이 만나며 사기꾼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의 마음속 상처를 찾아내고, 상처를 치료해 주는 척하며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사기꾼들의 심리, 모든 사람이 불합리한 경쟁 속에서 거짓을 택하지 않듯,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 택한 것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진실한 세상에서 살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만들어낸 사기극 속 거짓된 세상에선 그들 역시 거짓되어 보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