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람 한 명, 얼굴만 아는 사람 한 명, 생판 모르는 사람 한 명과 여행을 가게 되었던 때였습니다. 돌이켜보니 조금 특이하고 생소한 조합이긴 합니다만, 믿음직하고 매우 친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사람과의 안정 유대에 모든 어색함과 불편함을 묻어가는 편이라 당시엔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과 두루 친분이 있는 주동자 한 명을 빼고는 각자가 주동자 한 명만 아는 상태에서 여행의 발단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모르는 사람과의 여행일지라도 첫 만남을 여행 당일 공항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사전 친목을 위한 저녁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어색한 인사와 몇 번의 젓가락질이 오가고 이내 각자의 여행 타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꼭 지키는 여행 스타일이 있는지 등등 원만한 여행을 위해 서로가 알아야 할 것들 말이죠. 1. 오후 느지막이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지 않기. 2. 테마파크는 꼭 가기 … 몇몇의 여행 성향들이 오갔습니다. 제 차례가 되고 주동자는 제 여행 스타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저는 뭐… 주관이 없어서요. 무엇이든 괜찮습니다.” 제 여행 스타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주동자는 제 말에 단박에 공감했습니다. 겸양의 말도, 배려의 말도 아니었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무엇이든 괜찮은 것이 제 여행 타입이었거든요.

늦게 일어나든, 일찍 일어나든, 테마파크를 가든, 가지 않든 상관없었습니다. 사실 혼자 여행을 갔더라면 일어나고 싶을 때 여유로이 일어나 테마파트보단 미술관이나 전시회, 한적한 카페에 갔었겠지만, 함께 가는 여행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그다지 중요한 옵션은 아니었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ok였죠. 남을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부딪히기 싫은 마음이 아닌 그냥 정말 무엇이든 괜찮아서 괜찮았습니다.

요즘 들어 이러한 제 만사 OK 성향이 누군가에겐 오히려 맞추기 어려운 취향이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제가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하는 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과도한 배려로, 알 수 없는 취향으로 다가갈 테니까요. 제일 어렵다는 ‘아무거나~ 근데 그건 빼고’ 취향으로 비칠 수 있겠단 생각이 듭니다. 정말 곧이 곧대로의 ‘아무거나'인데 말이죠. 

당사자도 모르겠는 저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저는 명확하게 정의할 취향이 없습니다. 뚜렷하게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 매일 듣는 음악도 알고리즘의 선택에 맡깁니다. 그나마 가진 기호와 선호들은 그다지 강제성을 띠고 있지 않습니다. 취향이 뚜렷하지 않으니 선택을 잘 하지 못합니다. 이런 말이 있더군요. ‘선택불가증후군’ 그게 바로 접니다. 저는 취향이 없는 걸까요?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에 저와 꼭 닮은 인물이 등장합니다. 주관과 취향이 없는 카스텔라.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사장이지만 자신의 취향을 잘 모르죠. 문화적 소양이 깊고 자신만의 뚜렷한 취향이 있는 아내가 모든 것을 주관합니다. 그가 먹는 것도, 보는 것도, 심지어는 시누이 집의 인테리어도 말이죠. 그런 카스텔라가 자신의 취향을 찾아나가기 시작하면서 부인과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연극을 본 적도, 소설을 읽은 적도, 그림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던 카스텔라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점차 자신만의 선택을 해나갑니다. 

“이 집에 내가 고른 물건 있어? 내가 좋아하는 거 하나쯤 놔두면 안 돼? 여기는 완전히 인형 가게 같아. 핑크색에 온통 새 그림, 꽃 그림. 더 이상은 못 참아.”

아내의 선택에 아무런 의견이 없던 그가 하나 둘 선택하기 시작했고 자신만의 취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카스텔라가 점차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취향이란 결국 자신만의 기준이자 무분별하게 휘둘리지 않을 단단함의 뒷배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카스텔라에겐 취향이 부재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경험해 보지 않아서 알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인 듯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크고 작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재가 바로 ‘취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의 갈림길 앞에 무엇인가를 선택하게 만드는 무의식 속의 기재가 ‘취향'이 아닐까요? 따라서 선택을 하는 한 취향이 없을 리가 없습니다. 각자가 하게 되는 선택의 일관성을 발견해 나가다 보면 취향을 발견할 수 있을 테죠.

그리고 그 선택을 만드는 것이 상황과 환경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숱한 발견, 그 속에서의 선택들이 취향을 만듭니다. 그리고 한 뼘의 취향들은 자신만의 가치를 만들어갈 토대가 되어줄 테죠. 취향의 색채를 뚜렷이 밝혀보기로 합니다. 이것저것 경험해 보고 선택해 보며 취향의 색을 찾아 나가보도록 하죠. 오늘만큼은 ‘아무거나' 말고 아무거나 무작정 골라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