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앤드류의 실력으로는 플레쳐의 밴드가 아니더라도 갈 곳은 많았을 겁니다. 그런데도 앤드류가 플레쳐의 밴드에서 애썼던 것은 앤드류가 ‘드럼을 치는 자신’이 좋았던 것이 아니라 드러머로서의 명성이 필요했기 때문이겠죠. 이렇게 플레쳐의 세상에서 발버둥 치는 앤드류는 현대 사회의 우리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 속에서 개인은 자율적이면서도 사회에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개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이유이죠. 사회적인 연대 속에서 구축된 체계가 개인의 행위와 의식체계를 형성하고 규제하곤 합니다.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하고 논리적임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의 합리적 사고와 삭막한 자본주의, 관료제적 일상 세계에 인간성은 말살되고 개인은 온갖 종류의 소외 속에 놓이게 됩니다. 삶의 주체로서의 개인이 사회에 밀려 부차적 요소로 전락하고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결정권자로서의 지위 역시 타인에게 박탈당하는 듯합니다. 그렇게 자기를 계발하고자 하는 욕구의 방향은 더 이상 자기 자신에게 향하지 않게 되고 더 많은 인정과 높은 지위, 부의 축적으로 향하게 됩니다. 삶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는 생의 본질은 흐려지고 현대 사회에 육화된 사회적 자기 자신만 남게 되는 것이죠. 마치 진정한 드러머가 아니라 플레쳐의 인정을 갈구하는 앤드류처럼요.

  우리 사회가 어느 순간 진보와 발전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이전 사회로의 회귀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점점 더 고효율, 고부가가치의 일이 가치 있는 것으로, 그 외의 것들은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마음 놓고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쉬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고, 휴가가 무척이나 대단한 이벤트가 되었으며, 생산적이지 않은 취미 활동을 하는 것에 나를 위한 보상이라는 합리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들은 좋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도움 되지 않는 일들일 뿐이며 ‘우리의 삶’에는 반드시 필요한 아주 기능적인 일들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죄책감 느낄 필요 없습니다. 죄책감은 오히려 사회집단 속에서 살아가느라 나 자신을 놓치는 것에 대해서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나’로 살아가는데 ‘나’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테니까요. 스스로로부터 소외된 자신을 챙겨야 합니다. 소외된 나를 다시 내 삶으로 끌어들여야 해요.

 그러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해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미 사회의 관습과 체계에 뿌리 깊게 익숙해진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사회 속 나에게 필요한 것 사이에서 혼돈에 빠질 수 있습니다. 말로는 자기 계발이다, 나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실은 사회의 기능주의 가스라이팅에 가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어요. 더욱이 우리 사회에 점점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해져 가면서 ‘알아서 잘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은연중에 체화된 사회의 신념체계라는 권력의 감시 속에서 자신을 채찍질하게 됩니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며 뒤처지지 않을까, 일반적인 속도에 미치지 못한 것은 아닐까 등을 걱정하면서요.

 우리는 자신의 목표와 비전을, 그리고 자기계발이라고 일컬었던 것들을 사회에서 잠시 떨어져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진단하며 빗나간 초점을 다시금 자기 자신에게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와 개인 간의 밸런스를 맞출 필요가 있어요. 자신의 자기계발적 의지가 과연 정말로 자신을 위한 것인지, 사회의 일원으로의 자기에 맞춰진 것이 아닌지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메타인지’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신의 인지 과정을 관찰 · 발견 · 통제 · 판단하는 정신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보다 고차원적인 생각의 기술로 ‘생각에 대한 생각’, ‘인식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좀 더 쉽고 간단히 말하자면 자신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제어하는 것입니다. 잠시 자기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위에서 스스로를 조망해 보면서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시야로 자기 자신을 바라봐보세요. 때로는 자신에 대해 관찰하고 발견하고 판단하며 '사회적인 나'와 '삶의 주체인 나' 사이에서의 균형을 맞춰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거대한 사회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삶의 동력과 성취 등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사회적 자기 착취가 필요하기는 합니다. 그러나 자기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자기 계발인 양 착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착취와 계발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으로 그 정도와 방향을 조절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루 종일 누워서 영화 보고, 잠자고, 놀고 먹는 것들이 게으른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내가 그러고 싶은 것이죠. 사회적인 나를 잠시 멈추는 것뿐입니다. ‘잠시 멈춤’이 뒤처지는 것 역시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멈출 때 앞으로 가고 있는 이들과 비교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죠. 초점이 ‘나’로 향하면 단지 그저 멈춘 겁니다. 언제든 원할 때 다시 출발하면 돼요. 그러니 우리 잠시 멈췄다가 출발하는 것을 면죄해 줍시다. 오늘의 여러분은 잠시라도 현대사회인의 스위치를 OFF 하고 각자로서의 스위치를 ON 하는 순간이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여기 스스로와 세상을 향한 채찍을 든  

두 영화를 소개합니다.

<미안해요, 리키> (Watcha)

안정적인 생활을 꿈꾸며 택배 회사에 취직하지만

생각과는 다른 일상이 전개되고,

가족은 난관에 부딪힌다. 가족을 위해 일하지만

일을 위해 가족에게 소홀해지는

점점 무너져만 가는 택배노동자 리키의 이야기

우리는 이미 할 만큼 하고 있습니다.

부디 맘 편히 편안해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안온한 하루를 블랙아웃이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