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가 무수히 많은 멀티버스의 자신을 통해 본 것은 행복, 즐거움, 불행, 살인, 가난, 공포 등 이 세상 그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조이는 모든 것이 덧없는 한낱 한 줌의 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찌 됐건 모든 것이 일련의 길고 짧은,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이 날 ‘시간’에 불과하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던 걸까요? 모든 멀티버스에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달은 조이는 이 부질없는 세상을 파괴하려 합니다.

 조이가 본 세상처럼 모든 것들이 소용없다는 것은 아마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우리는 시간 앞에서 한없이 무력한 존재들이니까요. 속상해하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화내며,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그 모든 순간과 사실들이, 심지어는 행복과 즐거움, 사랑마저도 결국에는 사라지며 언젠가는 마주할 ‘끝’ 앞에서 더없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릴테니까요.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상식적인 것은 ‘시간’ 뿐이고, 인간에 의해 정의되고 상식화된, 어떻게 보면 인간의 모순일지도 모르는 것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진리는 흘러가는 시간과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뿐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덧없는 세상에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사라질, 그저 인간의 소음일 뿐이라면 오히려 이것저것 재고 따지며 주변 시선에 얽매이거나 주저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세상을 무너뜨리려고 했던 조이를 변화시킨 것도 에블린의 사랑이었고, 그렇게 세상을 구한 것도 에블린의 사랑이었으며, 에블린이 자기 자신을 찾게 된 것도 자신과 자신의 삶을 향한 에블린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떤 것도 될 수 있었고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며 모든 확률과 경우의 수를 보았고 어느 곳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를 살게 하는 힘, 그녀가 살고 싶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녀의 딸 조이뿐이었죠. 그녀는 ‘그 모든 거절과 그 모든 실망’으로부터 조이와 에블린 자기 스스로를, 그리고 온 세상을 사랑할 용기를 얻은 것입니다. 마침내 그녀는 조이와 함께 뛰어내려줄 수 있는, 오롯이 조이 그 자체를 사랑해줄 수 있는 엄마가,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에블린이 되었습니다.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어찌할 도리 없이 흘러가야만 하는 인간이 유일하게 시간을 초월하게 하는 힘,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은 지나간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현재 사랑하는 사람에게 앞으로의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는 일도, 순탄치 않은 시간을 살아갈 힘을 얻는 것도 가능하게 해줍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모두가 ‘죽음’이라는 정해진 끝을 잠시 뒤로한 채 살아가는, 어떻게 보면 매일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피할 수 없이 모든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니까요. 그러니 우리 어쩔 수 없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게 되어있다면, 끝내 없어질 것들에 마음 쏟지 말고 그 귀하고 소중한 시간들을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것’으로 채워봅시다. 아까운 시간들을 아까운 감정들로 낭비하기엔 우리 우주에서 ‘나’로 살아가는 마지막 인생의 순간인걸요. 우리 다양한 형태의 사랑으로 모든 것들을 사랑해 보아요. 때로는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 우리를 옭아매는 무언가를 포기하고 놓아주며, 또 때로는 어지럽고 복잡한 머릿속을 따뜻한 다정함으로 정리하면서요. 경직되고 푸석한 차가운 마음의 경계를 풀고 다정히 손 내밀어 줍시다.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게 말입니다.

 세상은 무상하고 덧없는 것들로 가득하고 결국에는 그 모든 것들이 한 줌의 시간에 불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그 한 줌의 시간 동안 시기하고 미워하고 화내고 아파하지 말고 마침내 끝이 날 그 시간을 소중히 그리고 다정하게 대해줍시다. 이왕이면 사랑으로 말이죠.

• 우리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멀티버스, 즉 다중우주는 우리의 머릿속과 매우 닮은듯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들에서 다양한 감정들과 마주합니다. 그 감정들로 하여금 평소의 '나'와 달리 전혀 다른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죠. 우주와 같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우리의 작은 우주, 머릿속에서는 여러 모습의 내가 살고 있습니다. 

• 어떻게 보면 영화의 멀티버스들도 실은 혼란스러운 에블린의 머릿속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소 산만하고 빠른 전개가 에블린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저마다의 멀티버스를 장착한 채 살아가고 있고 아직 알지 못할 뿐 그 작은 우주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영화 속 에블린처럼 휘몰아치는 혼란이 찾아왔을 때 혹은 일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과 선택의 갈림길 앞에서 우리의 머릿속 어딘가에 있을 또 다른 나를 믿어보세요!! 무의식의 멀티버스 속 자신을 믿고 굳건히 나아가다 보면 분명 어딘가에 도달할 것입니다. 

🎬 여기 피할 수 없는 운명 가운데

결국 사랑을 택한 두 영화를 소개합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Netflix, Watcha, Wavve )

부모에게 버려져 양로원에서 노인들과 지내던

80세 외모의 사내아이 벤자민 버튼,

거꾸로 흘러가는 그의 시간 속에서 운명의 상대

어린 데이지와 노인의 모습으로 만나게 된다.

엇갈린 시간 속 피어나는 둘의 사랑 이야기.

마침내 사랑할 용기를 얻으시길,

따스한 온기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다정함을 보여주세요.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