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의 전부라고 하기엔 변변찮은 배낭 하나와 캐리어 하나를 끌고 밖으로 나온 미소는 대학시절 같이 밴드 활동을 했던 멤버들을 차례로 찾아갑니다. 순수하고 뜨거웠던 그 시절, 그 사람들과는 달리 각자만의 사정이 생겨버린 그들은 여전히 그대로인 미소를 딱하게 여기거나 염치없다 생각하며 자신들만의 잣대로 그녀를 동정하거나 한심하게 여기고 꺼립니다. 여전히 위스키를 좋아하고 담배를 태우는 미소에게 ‘아직도’ 그렇게 사느냐면서 말이죠. 지독한 현실 한가운데에 서 있는 그들에겐 좋아하는 담배와 위스키를 포기하지 못해 집을 나온 그녀가 현실감각 없는 철부지로 느껴졌을 겁니다. 그들은 이미 매서운 현대사회의 눈초리에 맞춰 자신과의 타협을 해온 보통의 우리니까요. 그래서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미소가 철이 들기엔 멀었다고 생각했을 그들입니다. 저 역시 미소가 지극히 현실적인 사정 속에서 더없이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인 삶을 산다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아직’, 어떤 일이나 상태 또는 어떻게 되기까지 시간이 더 지나야 하거나 어떤 일이나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미소의 세상엔 그들이 미소가 아직 되지 못 했다는 그 철듦의 상태는 없습니다. 미소는 여전히 그리고 한결같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있는 상태가 끝나지 아니하고 지속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남의 집을 청소해 주는 가사도우미 집 없는 미소는 이미 집이 있는 멤버들의 집을 전전하며, 그러나 여전히 단단한 자기 자신을 간직하며 살아갑니다.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인 ‘Microhabitat’ 즉, 미소서식환경은 ‘생물이 살아가는 매우 작은 규모의 일정한 자리’를 의미합니다. 미소는 갈 데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미소한 서식지를 찾아 여행 중인 것입니다. 남들이 헛된 희망이라 말하는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 놓칠 수 없는 것들을 간직하면서 말입니다. 남들의 시선에 끼워 맞추지 않고 그들의 기준에서 '유니크'한, 그러나 지극히 자신다운 삶을 살아가는 미소, 미소의 삶엔 집은 없어도 미소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늘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는 매일 적어도 한 번쯤은 타인의 시선 속에 갇히는 순간과 마주합니다. 그들의 잣대에 스스로를 가두거나 타인으로부터 오는 불쾌한 온기 속에 일방적으로 휩싸이며 말이죠. 그렇게 우리는 보이는 남들의 모습과 자신을 비교하고 판단하며 때로는 관심을 가장한 오지랖 앞에 한없이 작아지곤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이 있기 마련이고 각자만의 알맞은 속도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내가 남들보다 느린 것이 아닐까, 혹여나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직 내가 남들에게 부러워하는 그 빛나는 순간이 오지 않은 것뿐인 우리는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그리고 끈기 있게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느린 만큼 단단하고 견고할 것이니까요. 

  사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정답 및 풀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에겐 절대적이지만 서로에겐 상대적인 그 정답 및 풀이집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따라서 틀렸다는 것은, 다르다는 것은, 느리거나 유별나다는 것은 각자가 가진 해설지에 한정됩니다. 그러니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너와 내가 다른 해설지를 갖고 있을 뿐이니까요. 우리는 그저 자신만의 세상 속에서 나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며 순간의 선택에 온 마음 다해 신중하고, 선택에 잇따른 책임으로 부단히 노력하고, 노력의 결과를 경험 삼아 차근히 나아가며 각자만의 해설지를 써 내려가면 되는 것입니다. 가끔 다른 사람의 정답 및 풀이를 참고하면서 말이죠. 가사도우미 일도 잘리고 담뱃값에 이어 위스키값이 올라도, 항상 자신의 곁을 지켜줬던 남자친구마저 돈을 벌기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 결국 자신의 전부였던 모든 것들이 달라졌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젓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미소처럼요.

 그러니 우리 언제나 '나'로 살아가요. 어디까지나 내 삶의 이방인일 뿐인 타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나로, 어떠한 고난과 역경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굳건한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각자가 주인공인 세상을 살아갑시다.

"Ego sum lux mundi 내가 세상의 빛이고, Esto quod es 가장 자신다운 사람이 될 때 Things that make me who I am make me special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들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Zion.T의 <눈>이라는 노래를 아시나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감독 이요섭이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의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을 배경으로 끝이 났던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눈 내리는 어느 날을 배경으로 하는 뮤직비디오에서는 미소와 비슷한 옷차림을 한 여자 주인공과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 역의 안재홍 배우가 등장합니다.

• 영화를 보고 난 후 ‘돈을 벌러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던 한솔이 돌아왔지만 끝내 미소는 죽었다’는 설정으로 뮤직비디오를 보면 보다 더 깊은 여운을 느끼실 수 있어 함께 감상하시길 추천드립니다.  

🎬 여기 자신만 인생을 살아가는 

두 영화를 소개합니다.

<아이 필 프리티> (Netflix, Watcha)

뛰어난 패션 센스에 매력적인 성격이지만

통통한 몸매가 불만인 ‘르네’가

한순간에 예쁜 외모를 갖게 되었다 착각하게 되면서 점점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부디 세상 그 누구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를,

어느 것에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자기’를 찾기를 바랍니다.